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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당일치기 여행 - 동구릉, 구리전통시장, 현대아울렛 스페이스원, 구리타워 서울 근교 가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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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oy
댓글 0건 조회 69회 작성일 24-10-01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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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고구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해외 몇 나라를 여행차 다녀온 적은 있지만 타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아본 적은 없다. 이 나이 되기까지 내 나라 남한 땅을 참 바쁘게 싸돌아 다녔다. 열 아홉에 서울로 올라온 이후 내내 나그네 세월이었다. 마흔이 될 때까지 서울에서 머물다 경상도 하동 그리고 부산 영도와 경기도 가평을 거쳐 지금은 강원도 춘천에서 만16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쩌다 내가 전능자의 뜻을 따라 수많은 세월중에 1946년 허다한 나라중에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자체가 내 자의적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리고 구름이 바람부는 대로 창공을 떠 다니듯 나는 내 아내와 근 오십년을 살면서 함께한 세월보다 헤어져 지낸 세월이 더 많았다. 백년도 못사는 인생들이 젊은 날엔 항상 젊을 줄 알고 그 좋은 시절을 물 쓰듯 허송해 버리고 늙어 걷기도 힘든 병든 몸이 되고서야 허공을 치며 숨 가쁘게 살아 온 지난 세월에 속절없이 늙어버린 내 모습을 본다. ​몇달 전에 춘천시청에 가서 혹여나 해외 나갈 기회가 있을까 싶어 몇십년만에 여권 사진을 찍었다. 새로 찍은 여권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그게 내 사진이 맞다고 하는데 내 눈엔 아무리 봐도 내 얼굴이 아니었다. 내가 내 사진을 보고도 내 얼굴이 아니라고 우기니 제 정신인가? 하기사 정신 줄을 놓고 사는 이들이 어디 나 뿐일까?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엔 절반은 정신 줄을 놓고 식물 인간이 되었지만 숨 쉬고 산다. 내가 날마다 보는 이들이 이들 뿐이니 나도 나이를 부산고구려$ 속일수 없어 그들을 따라 가는가 보다. 안경을 벗어 손에 들고도 찾고, 금방 떠오른 단어가 금새 망각속으로 사라져 아무리 떠올리려 애를써도 소용이 없다.​엇그제 추석 연휴가 지나가자 눈 돌릴새 없이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들을 찾아 오는 가족들의 발걸음도 이제 뜸해 졌다. 세월을 비껴갈수는 없다. 세월에 묻혀 지나가서 홀가분한 것도 있고 지나가서 가슴이 메어지는 것도 있는 것이 인생사 다. 내가 서울에 올라온 1966년만 해도 전동차 요금은 2원 50전이었고 화장실 요금은 5원이었다. 나는 공중화장실 요금 5원을 아끼려고 좁은 골목에서 실례를 많이하곤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이래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 보면 사람사는 집보다 빈 집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사람없는 빈집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도 서울을 비롯 대도시 아파트값은 아직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나는 젊은 날 열 아홉평 아파트에 잠시 살아 본 외에 일반주택도 아파트도 소유해 본적이 없다.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나와 내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주거용 아파트가 아니라 오로지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데 있다. ​인간의 생각이 어쩌면 이다지도 계산적이고 이기적일까? 나와 내 가족이 몸담고 있는 집이 꿈을 만들고 추억을 만들고 그 집에 내 삶의 땀 방울과 손 때가 배어 있고 삶의 애환과 우여곡절 등 삶의 스토리가 있는 보금자리, 내 삶의 연륜이 켜켜이 묻어나는 그런 집 이 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을 가족들과 부산고구려$ 그리고 친지들과 서로 왕래하며 살던 정든 내 집, 내 인생의 스토리와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내 분신과도 같은 내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 혼이 깃들어 있는 내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몸을 옮기고 나면 살아서 다시는 오지 못할 내 분신과 같은 내 집을 두고 마치 이제 죽음을 앞두고 요양원에 늙은 몸을 맡기게될 때, 아! 이제 살아서는 다시 못올 것같은 그런 느낌인가 보다.​사람들은 일반 주택보다 아파트를 더 선호한단다. 왤까? 아마 살기도 더 편리하고 사고 팔기도 더 용이하기 때문일까? 나는 부산에서 목회할 때 우리교회에 출석한 어느 교우 내외가 일백평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본적이 있다. 두 내외하고 외 아들 달랑 세 식구가 살면서 그 큰 아파트에 사는 이유가 뭘까? 자기과시욕 외에는 생각나질 않았다. 이처럼 중국 역시 땅덩이로만 보면 대단히 큰 나라다. 그런데 땅덩이가 크다고 다 대국인가? ​오늘 이 대한민국은 중국이 우리를 녹두(綠豆)국(國)이라 부를만큼 작다. 옛적에 주(周)는 비록 나라는 작았지만 주변국 소위 칠웅(七雄)은 周의 권위와 위엄에 머리를 조아렸다. 왤까? 중국의 모든 문화가 주(周)에서 나왔기때문이다. 오늘의 중국은 어떠한가? 마치 시진핑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시황제(始皇帝) 처럼 군림하고 있지만, 그러나 중국의 세계전략을 보면 마치 평생을 농삿군으로 살던 졸부가 어느 날 갑자기 땅 값이 치올라 벼락부자가 된 졸부처럼 자기 과시욕이 가히 제왕적이다. ​옛날 영국의 넬슨 제독이 프랑스와 이스파니아의 연합 무적 함대를 저 유명한 트라팔카(Trafal gar해전)에서, 즉 1805년 10월 스페인 의 앞바디에서 부산고구려$ 영국의 넬슨제독이 이끄는 영국함대가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무찔러 대승을 거둠으로 비록 넬슨은 이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일신 5대양의 모든 제해권을 장악하여 유럽의 일개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은 이후 세계의 모든 바다의 제해권은 물론 전세계의 무역을 거의 독점하여 일약 '태양이 지지않는 대영제국'이 되었다. ​섬나라 일본! 그들은 우리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사색당파에 빠져 천금같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을때 그들은 소위 환골탈태하듯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일신 우일신'으로 나라를 새롭 게 하였으니 이것이 소위 명치유신이다. 나라가 근대화되니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의 그 기세를 흉내내고 싶었던가? 그래서 그들의 눈엔 우리 조선이 중국으로 가는 교두보처럼 보였던가? ​마침내 그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과 중국 정복의 꿈을 품고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영국의 넬슨제독을 훨씬 능가하는 이순신에게 초토화 되고 말았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일본과 중국을 사이에 두고 있다. 중국의 주변국가들은 하나같이 중국을 울타리처럼 에워싸고 있다. 유럽대륙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 모든 나라가 힘의 균형을 이루며 나라를 형성하고 있는데 비해 비단 중국은 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이 중국의 주인이 된다. 한족(漢族)이 중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중국 중원의 주인이 된 것은 비단 漢족만이 아니고 주변의 여러 민족들이 중원을 놓고 수많은 물고 물리는 전쟁들이 있었다. 그래서 종족이 가장 많은 한족(漢族)이 주인이된 예도 있고, 소위 오랑캐라 부르는 주변 민족들이 중국 중원의 주인이된 예도 허다 했다. ​물론 인구가 가장많은 漢족이 중국 중원의 주인된 예는 많지만 그러나 수많은 중국 주변민족들이 발흥하여 중국을 지배할 때가 더 많았다. 부산고구려$ 예를 들어 발해와 고구려가 일시 그러했고 몽고족은 징기스칸 에 의해 중국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 원(元)을 세웠다. 또 거란족 '아율아보'가 세운 요(遼)가 있다. 그리고 만주족 누루하치(태조)가 명(明)을 멸하고 1616년 나라를 세우고, 1636년 태종이 국호를 청(靑)이라 하였으나 1912년 신해혁명 으로 망하고, 지금은 마오쩌뚱에 의해 공산일당의 '중화 인민 공화국'으로 '시진핑'주석이 사실상 황제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주변 국들이 중국의 영토가 되거나 제후국이 되면 중국에 뭐가 이로울까? 제국의 대 확장인게다. 일본이 중국을 넘보지 않고 우리나라를 병탄한 것에 만족했더라면 어땠을까? 모르긴해도 어쩌면 지금도 한반도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더더하고 욕심을 내다가 결국 손에 쥔 것까지 다 잃고만 것이다. 과유불급(跨逾不及)이란 이를두고 한 말이다. ​한반도의 반토막인 대한민국이 영락없이 팥알갱이처럼 보여 중국인들이 대한민국 을 '녹두국'이라 비하해서 부른단다. 그러나 중국 대륙이 크다해서 중국인들이 대인(大人)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듯 '비단장수 왕서방'이란 말은 구두쇠같은 '쫌생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들의 속알 딱지가 영락없이 시정 잡배기만도 못하다. ​시편 137편 1절을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떠올리며 울었도다."​이처럼 나라를 잃고서야 나라없는 질곡의 세월을 슬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 또한 나라 이름도 우리 말 우리 글도 내 이름과 성(姓)도 민족의 얼도 한순간 다 빼앗겨 오천년 역사의 대한국인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로 일년도 아니고 5년도 아닌 36년을 나라도 이름도 성도 우리나라 말도 글도 민족의 혼까지 완전히 말살 당한 인격없는 일본 놈의 종으로 살아야 했다. ​어디 부산고구려$ 그뿐인가 일본은 우리 민족이 일본 땅에서 살때 국적을 '조선'이라했다. 그당시 '조선'은 망하고 없었다. 이는 한마디로 무국적자로 깔아 뭉개버렸던 것이다. 우리 대한민족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의 실체가 이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을 아는 국민은 드물다. 오늘날 국가는 국민 국가와 국민주권국가 로 구분하는데 아시아 국가에서는 민족 국가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행정부를 구성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실질적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그런 대한민국은 20세기 전반에는 민족국가라고 평가받았으며 국기에 대한 경례는 '대한민국'이 아닌 '조국과 민족'에 충성했으나, 2007년 이후 부터는 ‘대한민국’으로 정정하였으며 2011년 이전까지는 혼혈인은 징집에서 제외되었었지만 2011년 이후에는 혼혈인을 받아들이면서 입영선서에 '민족'이라는 단어를 '국민'으로 대체했다. 2020년에는 저 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으로 혈통적 한민족 정체성을 포기하고 이민개방을 통해 다민족 국가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폴란드 시인 쇼팽은 조국이 러시아에 의해 무참하게 짙밟히자 조국을 떠나 살면서도 그는 그리운 조국을 위해 폴란드에 대한 조국애로 지은 곡이 바로 '이별의 곡'이다. 나의 마음 조국에게 바치려 하는 이 노래를 들으시라! 내 조국을 위한 노래가 나의 가슴에 불타오르는 나의 사랑을 받아 주시라! 그리운 님 잃으면 나 홀로 어이하리. 언제 다시 만나려나. 아 그리운 님! 나의 순정을 받으소서.​우리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는데 민족이 둘로 분단되어 총 뿌리를 서로 겨누고 축복을 화로 바꾸어 민족상잔의 비극을 스스로 만든 참 부산고구려$ 어리석은 민족이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다른 민족과는 근본이 다르다고 교만 떨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자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앗시리아에, 남 유다를 바벨론에 자녀들을 굴비처럼 묶어 장장 900km를 이주시켜 바벨론 강변에서 눈물로 한탄하는 모습을 시편에 기록해 놓았다. 우리도 나라를 빼앗기고 중국과 미국등 전세계로 뿔뿔히 흩어져 나라없는 비참한 설움을 격지 않았던가?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로 세운 선민(選民)임에도 하나님을 모르는 바벨론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선민의식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우리가 바벨론의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 버드나무에 우리의 수금을 걸었더니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되려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라 하도다.(시 137:1)” ​내 나라 대한민국은 영원한 나의 조국이며 대한민국 국민은 최근 외국에서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환대를 받고 Samsung 때문에 대한의 긍지가 살아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5천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 시간동안 수많은 외침과 내정의 불안으로 국민들이 받아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힘겨웠지만, 이 모진 싸움을 모두 이겨 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 옛날과 모든 정황과 여건이 다르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만약 북한에 먹히거나 중국 일본에게 다시 침공을 당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춰 버리게 될 것이다. 서푼어치도 안되는 이념, 지역, 색깔 등의 이유로 주야장창 싸우고 있는 나라 꼴이 참으로 불쌍하기만 하다. ​우리 모두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함선에 타고 있기에 그 함선이 침몰하면 좌파건 우파건 모두가 수장됨을 부산고구려$ 기억해 두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바로 내 부모요, 나 자신이요, 내 자녀의 미래라는 것을 기억하시라! 오늘 지구상에서 민족국가는 이스라엘 하나 뿐일 것이다. 그들의 나라사랑은 아주 특이하다. 이유는 주전 586년 나라가 망하고 물경 2500년 동안을 나라 없는 설음을 격었기에 나라 사랑이 뼈에 사무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든 나라 사랑은 자신의 희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나라사랑의 한 예를 들자면 3차 중동전쟁(1967년)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중동 국가의 학생들이 일제히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이유인즉 이스라엘 학생들은 전투에 입대하기위해 고국을 향하는 비행기를 재빨리 탔다. 이와 달리 아랍 학생들은 혹시 징집될까 봐 숨어버렸기 때문에 하나같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6일 만에 6개 아랍연합국을 물리치는 쾌거를 남겼다. 나라사랑은 자신의 희생에서부터가 시작이다. ​아랍 학생들처럼 나라보다 내 목숨이 먼저 인가 아니면 내 생명보다 나라가 먼저 인가로 결정된다. 승패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다.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 9:24)” ​개인이나 나라와 민족에게 소망은 가장 소중한 부요다. 우리에게 하늘의 소망이 없다면 이땅의 부요나 권세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것이 무슨 기쁨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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